신경림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종교 시인 경력 | 신경림 농무 시인 별세 이유 배경
한국 문단의 거목 농무 신경림 시인이 사망 별세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신경림 농무 시인 사망 별세 이유와 그의 배경을 살펴보고 신경림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종교 시인 경력 등의 프로필 정보를 최대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경림 농무 시인 별세 이유 배경
신경림 시인이 암 투병 끝에 22일 오전 8시 17분 향년 88세로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입니다.
신경림 시인은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와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해 1956년 '문학예술'지에 '갈대'와 '묘비' 등이 추천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건강 악화로 한동안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도 했으나, 다시 서울로 돌아와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일하며 10년간 절필했습니다.
1965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원격지', '산읍기행', '시제' 등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197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발표한 '농무', '전야', '서울로 가는 길' 등이 주목받으며, 농민들의 한과 고뇌를 담은 첫 시집 '농무'를 1973년에 펴냈습니다.
이 시집을 통해 그의 시들은 시골 흙냄새에 묻은 생활의 땀냄새와 한, 의지를 담아내며 이른바 '민중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시 '가난한 사랑노래'는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즐겨 찾는 애송시로 꼽힙니다.
신경림 시인은 민초들의 슬픔과 한, 굴곡진 삶의 풍경과 애환을 질박하고 친근한 생활 언어로 노래한 '민중적 서정시인'으로 불렸습니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그를 "우리 시대의 두보(杜甫)"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생전에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시카다상, 만해대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동국대 석좌교수를 역임했습니다.
또한, 한국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상임의장 등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장례는 그의 높은 위상을 고려해 주요 문인단체들이 함께하는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으로 발인은 25일 오전 5시 30분에 거행되며, 장지는 충북 충주 선산입니다.
신경림 나이 고향
신경림 시인은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학인으로, 본명은 신응식이며 1936년 4월 6일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출생으로 본관은 아주 신씨 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면서기를 지낸 신태하이며 신경림 시인은 4남 2녀 중 장남으로 종교는 불교입니다.
신경림 학력 경력
그의 학력은 노은초등학교, 충주사범학교병설중학교, 충주고등학교, 그리고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56년, 그는 '문학예술'지에 '갈대' 등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새재', '가난한 사랑노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낙타' 등의 시집을 발표했으며, 시학 해설서인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통해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들을 소개하는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그의 시 중 '가난한 사랑노래'는 많은 독자들에게 애송되는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시의 일부 구절인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는 본래 '탱크 바퀴 굴러가는 소리'였으나, 당시 군사정부의 검열을 의식한 출판사의 권유로 수정되었다고 합니다.
신경림 시인은 한국 문단의 여러 유명 시인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습니다.
천상병, 김관식, 조태일, 민병산, 황석영 등과는 특히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여러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일화와 문단에서의 경험을 담은 수필집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를 출간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입니다.